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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도 상편

 

최근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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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경,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린다.

“예, 김 정수입니다.”

“아.. 김형, 나요. 오늘 퇴근하고 스케줄이 어떻게 돼요?”

“별 스케줄이 없는데.. 왜요?”

“오늘 비도 축축하게 오는데 간만에 같이 한잔합시다.”

“좋죠.. 어디서 만날까요?”

“H동 로타리에 있는 7080 앞에서 일곱시에 만나죠.”

“그래요. 그때 봅시다.”

이 재식이라고 재법 규모가 있는 공장을 운영하는 친구인데 나와는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린다.

그 친구나 나나 술을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하는.. 말 그대로 한량 축에 들어간다.

내가 이전에 올렸던 글들 중에서도 이 친구가 자주 등장한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그 친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다.

남들도 그럴지 모르지만, 오십이 된 이 나이에도 비가 오는 날은 괜히 마음이

센치해지고 술에 젖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잠시 후, 그 친구가 도착한다.

“아.. 김형, 먼저 도착했네요.”

“오늘 비도 오고 술 맛이 나겠는데요, 거기에다가 이거라도 옆에 있으면 금상첨화

이겠는데..”

내가 빙글거리며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린다.

“내가 언제 김형 실망시키는 것 봤어요? 오늘 좋은 건수 있으니 기대해봐요.

자, 들어갑시다.”

“술 마시기에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그렇겠네.. 그럼, 아직 식사 전이죠? 어디 가서 요기나 합시다.”

같이 조금 걸어 내려와 식당으로 들어가서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나오니

시간이 여덟시 다.

7080으로 들어가니 무대에는 예전의 통기타 가수인 이 치현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같이 좌석을 잡고 앉아 맥주를 시켜 마신다.

재식이 입을 연다.

“김형, 조금 있다가 혜정이가 올 거예요. 자기 친구 데리고..

한번, 잘해봐요.”

혜정이라면 재식이 애인 중 하나다.

여러 번 같이 합석을 해서 술을 마신 적이 있고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 어린데

얼굴이 제법 반반하고 애교도 있어 날보고는 항상 오라버니라면서 살갑게 군다.

재식이 애인이 아니라면 한번 손 좀 봐주련만..

맥주 다섯 병이 비워질 즈음, 혜정이와 여자 둘이 우리 좌석으로 온다.

재식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나와 재식이가 같은 좌석에

앉고 여자 셋이 맞은 편 좌석에 앉는다.

혜정이가 날보고 생글거리며 인사를 한다.

“오라버니, 오랜만이네요.”

내가 손을 내밀어 혜정의 손을 잡는다.

“안본 사이 많이 예뻐졌네요.”

“원래 내가 미인이잖아요?”

“허 참..”

재식이가 혜정일 보고 입을 연다.

“친구분 소개해야지요?”

“참, 이 쪽은 윤 미숙이고, 저 쪽은 김 지선.. 내 친한 언니들이에요.”

“이 재식입니다.”

“김 정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혜정이가 내게 눈을 찡긋하며 말을 한다.

“오라버니, 잘 해봐요.”

“허허! 그래야지..”

윤 미숙이란 여자는 여자치고는 큰 키에 체격이 좋은데다 얼굴이 각이 져 남자 같은 모습이

내 취향이 영 아니다.

이런 여자가 여자 일행 중에 끼여 있으면 자기가 무슨 보호자라도 된 것처럼

설치기 때문에 그 날은 작업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옆에 앉은 김 지선이란 여자는 아담한 키에 어깨 선이 둥글고

얼굴은 동글동글한 게 귀염성이 있고 깜찍하게 생겼다.

하나 특이한 게 있다면 눈동자가 유독 까만 게 반짝거리고 빛이 나는 듯이 느껴진다.

그리고, 모자를 쓰고 있는데 머리칼이 안 보이는 게 머리를 깎은 것 같이 보인다.

참, 특이한 여자구나.

내 옆에 앉은 재식이도 나처럼 그런 걸 느꼈는지 술을 마시면서 힐끔힐끔 쳐다본다.

그러나 지선이란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 말없이 무대만 바라본다.

이 여자에게 작업을 해야 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지선이에게 말을 건넨다.

“지선씬 참 미인이시네요.”

술을 마시며 무대만 바라보던 지선이 날 쳐다본다.

“근데 머리카락이 안 보이는 것 같은데...”

지선이 말없이 미소만 짓는다.

예전에 TV에서 본 가수들이 나와 복고풍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어느덧 빈 맥주병이 꽤 쌓인다.

남자같이 생긴 윤 미숙이 이제 그만 가자고 한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열시가 다 되어간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재식이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온다.

그새 빗줄기가 가늘어져 있다.

재식이 일행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이렇게 헤어지기도 섭섭하고 어디 가서 한잔 더 하죠.”

미숙이 나선다.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헤어지죠.”

역시 내 생각대로다. 오늘 같은 날 절대로 도움이 안 되는 여자이다.

내가 거든다.

“비도 이렇게 축축하게 오는데 선남선녀들끼리 분위기 한번 잡아봅시다.”

미숙이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연다.

“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인데 빨리들 들어가셔야죠.”

허 참, 대책없는 여자네. 자기가 무슨 신 사임당쯤 되는 줄 착각하고 있나..

이 시간까지 외간남자하고 같이 술을 마셔놓고는..

이번엔 혜정이 미숙일 보고 말한다.

“언니, 딱 한잔만 더하고 가자.. 응?

나.. 재식씨 정말 오랜만에 만났단 말이야.”

미숙이 대책이 없다는 듯 혜정일 바라보더니

“그럼, 너희들끼리 마시고 와. 난 먼저 갈 테니..”

그리고는 횡 하니 돌아서더니 마침 서있는 빈 택시에 올라타 버린다.

말리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다.

드디어 폭탄이 제 스스로 제거가 되었구나.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때까지 지선이는 말없이 우산을 받쳐든 채 서 있고, 이번엔 혜정이 지선을 보고

말한다.

“언니, 조금만 더 놀다가 가자.”

지선이 싫다 좋다 말이 없다.

내가 다시 나선다.

“자 자, 갑시다. 이차는 내가 쏠 테니..”

내가 재식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어간다.

잠시 후, 뒤를 돌아다 보니 혜정과 지선이 조금 뒤쳐진 채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며

따라오고 있다.

그럼, 그렇지..

간만에 괜찮은 여자 하나 엮으려나..

내가 재식이에게 말한다.

“지선씨는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던데.. “

재식이 맞장구 친다.

“내가 보기에도 머리를 빡빡 깎은 것 같데요.”

“왜 머리를 깎았을까? 인물은 예쁘장하게 생겼던 데..”

“글쎄, 사연이 있겠지요.. 그나 저나 김형, 오늘 봉 잡은 것 같은데요?

인물도 괜찮은데다 아담하고 통통한 게 색 꽤나 쓸 타입 같은데..”

“허허, 두고 봐야 아는 거지요.”

“근데, 김형, 저 여자 혹시 어디 아픈 게 아닐까요? 암에 걸렸다든지..

왜,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머리를 빡빡 깎는 것 같던데..”

“아하! 그런 모양이네요. 멀쩡한 여자가 그냥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진 않았을 테고..”

가벼운 기분으로 엔조이하려고 했던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만일 저 여자와 엮어진다면 나도 그 비극적인 스토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마음도 든다.

하지만, 평범치 않은 그녀의 외모와 파란만장 했을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도대체 그 여자에게 무슨 스토리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재식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형, 저리로 들어 갑시다.”

재식이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노래방이다.

뒤따라오는 여자들을 위해 잠시 기다린다.

넷이서 노래방에 들어가 맥주를 시키고 재식이와 재식이의 애인인 혜정이 옆에 같이 앉고

나와 지선씨가 같이 앉는다.

서로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마시며 돌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보통 때 같으면 내 파트너에게 짖궂다 싶을 정도로 스킨십도 하고 재미있게 놀겠지만

오늘은 지선씨가 안됐다는 마음에 아주 정중하게 그녀를 대한다.

재식이도 그런 나를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 별말을 안하고 자기 일에만 열중을 한다.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혜정이와 서로 키스를 하고 주무르고 할 짓은 다 한다.

이윽고 지선씨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른다.

노래 제목이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여자가 불러야 제 맛이고, 애절한 가사와 여성특유의 호소하는 듯한 멜로디가

가슴을 적신다.

예전에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지만, 나나 재식이나 노래라면 한가닥하는 사람들이고

그 동안 노래 잘 부른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지금 지선씨 정도로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처음 본다.

좌석에 앉아 술을 마시며 한침 혜정이에게 작업을 하던 재식이도 하던 짓을 멈추고

노래를 부르는 지선씨를 바라보며 집중을 한다.

나도 모르게 좌석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는 지선씨의 옆으로 가서 그녀의 어깨를

껴안는다.

지선씨의 노래가 끝이 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진다.

다시 재식이와 혜정이가 나가 서로를 껴안고 노래를 부르고 나와 지선씨는

좌석에 앉아 같이 술을 마신다.

내가 지선씨에게 말을 건넨다.

“지선씬 참 노래를 잘 부르네요. 내가 아주 감탄을 했어요.

특히 ‘화장을 고치고’는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노랜데 정말 잘 들었어요.

오히려 왁스보다 더 잘 부르는 것 같아요.”

지선씨가 얼굴을 붉힌다.

“아이, 무슨 말씀을.. 절 좋게 보시니 그렇죠.”

그냥 지선씨의 얼굴을 확 깨물어주고 싶다.

그래, 불치의 병에 걸렸으면 어떠랴?

그녀를 안고 싶다는 욕구가 더욱 강해진다.

내가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폰번호를 묻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순순히 자신의 폰번호를 알려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화를 하시려면 오후 여섯시 이후에 하세요.

제가 좀 하는 일이 있어서요.”

“잘 알았습니다. 수일 내로 연락을 할게요.

그런데, 지선씨는 집이 어디에요?”

“저, S동에 살아요.”

S동이라면 지금 우리가 있는 H동의 바로 옆 동네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놀다가 열 두시가 넘어서야 노래방을 나온다.

혜정이와 지선씨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와 재식이는 대리운전을 부른다.

대리운전기사가 올 동안 둘이서 담배를 피운다.

재식이가 입을 연다.

“내가 혜정이에게 슬쩍 물어봤는데, 혜정이도 지선씨와 그렇게 친하진 않는지

확실한 건 잘 모르고 지선씨가 얼마 전에 많이 아팠다고 하던데요.”

“그럼, 확실한 모양인데..”

“김형, 어떻게 할거요?”

“한번 더 만나보죠. 뭐..”

“김형, 지선씨에게 빠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뭐.. 어때서요. 만일 큰 병에 걸린 게 확실하다면 내가 위로가 좀 되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요?”

“하하하! 김형은 하여튼 로맨티스트야.."

그 이후 몇일 동안 지선씨의 모습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금방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남자가 가볍게 보이는 것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조금 뜸을 들이는 것도 좋으리라..

지선씨와 헤어지고 난 뒤 닷새 후, 오후 여섯시가 조금 넘어 그녀에게 전화를 한다.

지선씨가 예상보다 반갑게 전화를 받는다.

“저, 김 정수입니다.”

“아.. 예, 반가워요.”

“보고 싶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예, 잘 지내고 있어요.”

“오늘 시간 어때요? 보고 싶은데..”

선선히 대답한다.

“시간 괜찮아요.”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정수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H동에서 만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S구청 앞에서 만나죠. 주차시키기도 좋고..”

“그렇게 해요.”

바로 회사를 나선다.

S구청 앞에 도착하여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도로 부근으로 나와 지선씨를

기다린다.

약 십분 정도 기다리고 있는데, 검정색 그렌져가 내 앞에 와서 선다.

차창이 썬팅이 되어 있어 차 안이 보이지 않는데 조수석 차창이 내려간다.

그리고, 지선씨가 운전석에 앉아 나를 보고 빙긋 웃으며 말한다.

“정수씨, 타요.”

어허, 이런.. 그렌져라니..

전혀 예상 밖이다.

지금까지 지선씨가 안되었다는 마음과 불쌍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내가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다.

내가 조수석에 올라타고 차가 출발을 한다.

오늘도 역시 지선씨는 모자를 쓰고 있다.

멋적은 마음에 내가 한마디한다.

“어디로 가시게요?”

지선씨의 입에서 또, 예상과 다른 말이 나온다.

“이쪽 동네에는 아는 얼굴들이 많을 것 같아서 강 건너 가려고요..”

황당한 마음에 입을 다문다.

아는 얼굴들이 많다니? 지선씨가 유명인사라도 된다는 말인가?

차가 낙동강 다리를 건너간다.

지선씨가 입을 연다.

“어디 아시는 데 있어요?”

“글쎄요.. 강변에 배를 띄워놓고 오리고기를 하는 곳이 있는데..

지금 시간이 늦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그리로 가요.”

차에 있는 CD플레이어에서 여가수의 노래가 나온다.

지선씨가 말한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누군지 알겠어요?”

“글쎄요..”

“제가 부른 노래예요.”

다시금 놀랜다.

“이야, 기성가수 뺨치는 솜씬데요?”

“저.. 취미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요.”

“내가 보기엔 취미생활 이상인 것 같은데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오늘 몇 번을 놀랜다.

다시 지선씨가 입을 연다.

“저기.. 정수씨, 나에 대한 이야기 못 들었어요?”

혹시, 병 이야기 하려나..

“지선씨에 대한 이야기 들은 것 없는데요.”

“사실은.. 저 OO사 주지예요.”

내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스님이란 말이에요?”

“그래요.. 놀라신 모양이죠?”

“아.. 아니.. 예상 밖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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